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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응답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

기사입력 2022.02.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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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시편 99:6-9

     

    [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 살아갑니다. 그 욕망을 추구하는 데 방해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동원합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추구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욕망이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인데 무엇을 바라는 인생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은 신을 찾고 싶어 하고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 시절 기독교가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기독교 신앙의 힘은 대단합니다. 결국 기독교 신앙이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로마의 국교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기독교가 로마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 모든 질문이 종결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면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영혼 불멸설'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멸하지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영혼은 영원합니다. 사후 세계에서도 우리의 영혼은 멸절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는 사상입니다. 영혼이 불멸하는데 이 세상에서 믿음은 영생으로 영원하며, 믿지 아니하면 저주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에 대한 믿음은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되 바른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오늘 본문인 시편 99:6~9절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6-7).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말씀은 시편입니다. 본문을 이해하는 데 시편 안에서만 안주하면 안 됩니다. 구약 성경 전체 속에서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살핀 다음에는 최종적으로 신약 성경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 본문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왜 이런 절차를 따라 본문을 살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이렇게 하여야 본문을 통해 주신 풍성한 은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확인해야만 우리들의 신앙과 실천적인 행위가 역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풍성한 하나님 말씀을 확인하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맹목적 신앙은 살아가는 삶의 의미도 맹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본문의 전후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본문 시편 1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다스린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통치하다’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다스리며, 통치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어떤 통치인지를 알려면 그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1절 문맥을 보니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라는 말씀으로 ‘여호와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온 피조 세계를 통치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보호와 간섭을 무시하면 어려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와 통치를 거절하면 불행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약 성경의 핵심 진리를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다.”라는 진리입니다. 이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있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는 언약의 백성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왕입니다. 2절에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모든 백성 위에 높으시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1절에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만나주는 장소입니다. 언약의 백성을 만나주시는 만남의 장소로 언약궤 앞의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곳은 대제사장이 언약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제물로 죄용서함을 받은 제사를 드리며 죄를 용서해 구하는 장소입니다. 지성소에 있는 법궤 위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기도 응답의 조건은 무엇입니까?(6절)


    무조건 인간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까? 기독교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되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신을 움직이는 형식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런 모습으로 제시된 일이 없습니다. 이는 기도의 조간이 아닙니다.


    본문 6절에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라고 합니다. 여기 기도 응답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 신분을 가진 모세와 아론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와 제물을 통해 만나주시고 불러주신 사무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지성소에서 죄용서 함을 받은 언약의 백성이 드린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본문 6절에서 보여준 기도 응답이며,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언약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셋째, 기도 응답을 받은 언약의 백성은 말씀에 순종합니다(7절).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에 따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백성이 됩니다. 그들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에게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합니다(사 43:1).

     

    2. 기도 응답을 받아도 계속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8절).


    본문 8절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 응답을 받고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항상 순종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요동치는 우리의 형편입니다. 이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때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언약을 배반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징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본문에서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잘못을 없었던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훼손됩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 맺은 언약의 본질이 훼손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용서의 길을 주십니다. 그 용서는 구약 성경에 그토록 우리를 긴장하게 하면서 주신 제물을 통한 제사입니다. 제사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시는 장소입니다. 용서해 주시는 자리입니다. 죄를 범한 자들을 대신하여 제물이 희생을 당합니다.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제물이 희생을 당합니다. 당사자를 대신한 대리자에게 죄의 책임을 물어 당사자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속 방법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기도 응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일지라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 등장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3. 기도 응답과 용서받은 자들의 감사예배가 있습니다(9절).


    본문 9절에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라고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무심코 지나가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서 말씀한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여기에 통과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한 거룩하지 못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또한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 응답과 용서받은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높여야 높임 받은 하나님은 아닙니다. 원래 높으신 분이십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신약 성경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무시하면 그것은 어쩌면 유대교와 같은 것입니다. 유대교는 신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거부합니다. 오로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소유하고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시편 말씀에 대한 전후 배경과 문맥 속에서 설명하고 나서 신약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의 통해서 이 본문을 설명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을 만나주는 제사, 지성소, 법궤, 제물, 제사장 등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해 주는 말씀이 곧 본문 시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씀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편 본문을 말씀을 읽은 후 이 말씀이 어떻게 신약 성경에서 성취되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요 14:13). 


    요 16: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막 10: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합니다.


    요 1: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본문 시편에서 기도 응답의 조건인 제사에서 희생당한 재물로서 어린양을 예수님으로 적용합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본문 시편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 용서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받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배가 하나님과 만남이라고 한다면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교훈과 적용


    요 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기도한 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 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빌 4: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복음 안에서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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