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열왕기상 강론 2]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

기사입력 2022.05.14 16:39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슬라이드1.JPG

     

     

    본문 / 왕상 1:1-53


    지난 시간에 열왕기서에 대한 서론적인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에 관해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즉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또는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셨는가?”, “구원받은 언약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변하느냐에 따라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신앙이 정립되게 됩니다.


    열왕기상에 나타난 역사는 종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해 주고 약속해 주는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열왕기서 자체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가 성취된 신약의 관점에서 열왕기서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서인 열왕기서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에는 본문인 열왕기상 1장 말씀을 통하여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약속한 유다 지파를 통해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 왕국은 무너지지 않고 번창하게 됩니다. 이제 다윗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중 솔로몬이 다윗의 왕통을 이어갑니다. 


    솔로몬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합니다(마 1:6). 여기서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고”가 아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합니다. 밧세바의 이름 대신 “우리야의 아내”라고 하여 우리야의 이름을 넣고 습니다. 이 문제 역시 앞으로 살펴야 할 부분입니다.


    1. 다윗 말년의 기록입니다(1-4).


    본문 1:1에서 4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1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역사의 이야기는 이제 다윗왕이 나이가 많았습니다. 얼마만큼 나이가 많았느냐면 아무리 이불을 많이 덮어도 따뜻한 줄을 몰랐습니다. 이때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서 왕의 시중을 들게 하고 왕의 품이 눕도록 하겠다는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왕의 몸이 따뜻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넴 여자 아비삭을 왕에게 데려왔습니다. 이 여자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녀가 왕의 시중을 들고 섬겼으나 왕은 그 여자와 관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다윗도 결국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1).


    본문 1절에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라고 합니다. 성경의 역사나 일반 역사를 살펴볼 때 “낳고 죽는” 역사의 반복입니다. 출생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류는 한 시대를 살다가 다 죽습니다. 이런 말씀을 살펴볼 때 “나도 반드시 죽을 때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우리는 그 죽음을 늘 준비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을 돕는 처녀와 동침하지는 않았습니다(4).


    다윗이 나이 많아 늙고 아름다운 처녀와 동침치 않았다고 합니다. 다윗의 나이는 짐작건대 70세 정도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5:4절에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허약한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젊은 처녀와 함께 눕게 하여 봉양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녀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기력도 기력이거니와 다윗의 과거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2. 왕이 되려고 아도니야가 음모를 꾸밉니다(5-10).


    본문 1:5-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5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첫째, 다윗은 헤브론에서 학깃이라는 여인에게서 네 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네 명의 아들은 ① 암논 ② 길르압 ③ 압살롬 ④ 아도니야 였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 위로 세 형제가 죽었습니다. 넷째인 아도니야만 살았습니다. 

     

    둘째, 다윗의 뒤를 이어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야심을 보입니다(5).


    본문 5절에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 때란 이제 다윗이 나이 많아 늙어 나라를 통치할 수 없는 때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나이 많은 자기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이 될 야심을 품고 전차와 기병과 호위병 50명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넷째아들이었습니다. 셋째가 압살롬이었으니 본문 2절에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였으며,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을 만한 합니다. 적어도 인간적인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특히 다윗은 그의 아내 학깃을 통해 얻은 네 명의 아들 가운데 넷째인 아도니야만 남아 있습니다. 당연히 아도니야가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아도니야가 아닙니다. 인간의 선택과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방식과 기준으로 자신의 구원역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 이끌어 가십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이 있다고 하여 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말 속담에 김칫국 먼저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의 행세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왕이 되려고 잔치를 배설하여 음모를 꾸밉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이복동생인 솔로몬과 솔로몬을 따르는 사람들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솔로몬을 다윗 이후 이스라엘의 왕으로 내정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가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란의 음모를 꾸며도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셋째,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7절).


    본문 7절에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라고 합니다.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상의하자 그들이 아도니야를 지지하였습니다. 


    여기 “모의하니”라는 말은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먼저 권력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제 다윗이 늙어 더 이상 나를 통치할 수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후계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아도니야와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은 긴박하게 움직입니다.


    넷째, 그러나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8).


    본문 8절에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합니다.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 외에 다른 사람들은 여호야다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가담하지 않는 인물들이 8절에 기록되는데 제사장 사독,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선지자 나단, 시므이와 레이, 다윗의 군 지휘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때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늘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준비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여호야다가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야다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는 여호야다의 권력에 휘말라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여호야다는 자기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했습니다(9).


    본문 9절에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라고 합니다.


    아도니야는 소헬렛, 즉 ‘뱀 바위’라는 곳에서 양과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여러 왕자들과 유다 출신의 모든 신하를 그 잔치에 초대하였습니다. 아버지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음모의 일환으로 사람들을 모아 선심을 베풉니다.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자신을 왕의 후계자로 지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큰 잔치를 베풉니다. 


    여섯째, 그러나 아도니야가 초대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10).


    본문 10절에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합니다. 9절과 10절 사이에 접속사는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 나단과 그리고 브나야와 군 지휘관들과 이복동생 솔로몬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뇌물을 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에 초대하지 않습니다.


    3. 나단 선지자가 솔로몬을 추천합니다(11-31).


    다윗이 나이 많아 늙어 기동할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은 두 계파로 갈라졌습니다. 아도니야 진영과 솔로몬 진영이었습니다. 아도니야에 의해서 초대받지 못한 솔로몬의 진영에서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첫째, 나단 선지자가 솔로몬의 모친인 밧세바에게 왕으로 그의 아들 솔로몬을 추천합니다(11-14).

     

    본문 11절에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라고 합니다.


    둘째, 밧세바가 다윗에게 과거 맹세를 회고하게 합니다(15-21). 


    그 맹세가 무엇입니까? 17절에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라고 합니다.


    셋째, 왕이 나단의 말을 듣고 밧세바에게 약속합니다(22-31).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는 것이 왕의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다윗 왕은 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라고 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안 되고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4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결정하여 세웁니다(32-40).


    39절에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뿔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하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웁니다. 40절에는 “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을 백성들이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도니야가 제아무리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해도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5.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의 즉위식을 듣고 굴복하자 솔로몬이 용서합니다(41-53).


    결국 반란은 무위로 끝났습니다. 반란자는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용서합니다. 48절에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다윗이 기도합니다.


    교훈과 적용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에게서 솔로몬에게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나단 선지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을 모르고 있었던 요압 장군이나 제사장 아비아달은 하나님이 왕권에 반기를 드는 자로 등장합니다. 아도니야 역시 하나님의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반기를 드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방해와 인간의 음모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을 내세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진행해 나갑니다. 제아무리 헤롯의 권력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권력을 극복합니다. 또한 바로와 같은 인간 권력이 찬란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역사 앞에서는 무위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 권력의 최고봉에 있는 바로를 극복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섭리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실수하지 않습니다. 신앙에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서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반역한 아도니야에 속한 자들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솔로몬에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그의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