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단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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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고백과 세례성례전은 은혜의 방법이다. 성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이 은혜의 방편인 성례는 이미 얻은 구원의 은혜를 강하게 확증하는 것이므로 구원의 필수적인 방법이 아니다. 즉 성례전을 받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례는 거룩한 의식으로 세례와 성찬이 있다. 세례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의 표로 시행하는데 세례를 받는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이 죄에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믿음의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완전히 씻어져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표로 세례를 받는다. 또한 세례는 언약 백성으로 들어가는 예식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여 언약 백성이 되는 서약이다. 또는 세례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가입하는 예식이다.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아 세례를 받으면 교회에 가입하여 책임 있는 교회 일원이 된다. 니케야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가 공식화되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이 세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게 되었다(마 28:19). 그러므로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시행해야 한다.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세례를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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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륜과 그리스도의 구속그리스도교(기독론)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문제는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의 구원 사역으로 매우 중요하게 제기된다. 하나님은 자기 창조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말씀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만드셔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첫 남자인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요, 인간은 그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며, 그 자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에덴동산의 청지기로 창조주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다. 그러나 유혹자의 등장으로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 결과로 죽음과 저주의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역한 백성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돌이켜 자기의 백성을 삼으셨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아담인 인간은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이때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값을 대신 갚으셔서 타락한 인류를 친히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을 입고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의 피를 통해 인류의 죄값을 갚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해 주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이루셨다. 창세기에서부터 구약성경에 등장한 제사와 제물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위한 약속이며 신약은 그 성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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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근원과 시작창세기에서 첫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항하여 범죄하므로 반역한 것은 유혹자 뱀이다. 뱀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영적 존재로서 마귀 곧 사탄이라고 하여 유혹자 마귀 곧 사탄을 뱀으로 일치시키고 있다(계 20:2-3). 첫 아담이 유혹자에 넘어가 하나님을 반역하게 된 문제는 풀리지 않는 비밀로 남아 있다. 성경은 언제 어떤 계기로 사탄이 범죄하게 되었는지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영적 존재로서 사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피조물인 영적인 존재인 천사들의 존재 자체는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찬양하는 데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죄의 기원이다. 죄의 기원을 창조주와 창조 자체에 둘 수 없다. 악과 죄의 기원을 창조주 하나님께 두는 것은 창조 자체를 죄라고 규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는 신성모독이라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반역한 것은 창조 사역이 마쳐진 일정한 후에 악과 죄가 생겼다. 하나님은 선 자체이시고 존재의 근원이시다. 악과 죄가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왔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벨까우어는 “죄는 시작만 있고 기원이 없다”라고 말한다. 즉 “죄는 하나님에게서 기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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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복음 선포형식예수님은 자신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하셨다. 이때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했다. 예수는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라고 했다(요 10:30-33). 그는 아버지와 완전히 동일한 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막 14:61-62). 사도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했고(요 1:1-2 등), 신앙고백은 이를 믿는 것이라고 했다. 신앙고백뿐만 아니라 복음의 선포형식이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했다. 그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오셨다. 아버지가 계시고 아들이 계시는데 그가 세상의 구주로 오셨다. 그리고 성령은 그 구원을 증거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아버지로부터 오셨다. 이런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심을 믿게 되었다. 니케야 공회(주후 325)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시오, 빛에서 나온 빛이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공식화했다. 성령의 은혜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원과 기도 응답을 받는다. 신앙고백과 복음 선포형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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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승천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승천하여 그림자에 해당한 지상의 상소가 아니라 하늘의 참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즉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타나셔서 그의 피흘리는 속죄사역을 완성하셨음을 보고하였다. 이는 하나님은 자기 얼굴 앞에 바쳐진 속죄 제사를 기뻐 받으시므로 세상에서의 구속을 완료하셨다. 속죄 제사의 완성의 표가 성령을 파송하시는 일이다(행 2:33).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 제사를 완성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다. 보좌 우편은 하나님 통치의 자리를 의미하며 그 통치는 성령을 보내심으로 시작한다(행 2:33). 예수님의 승천으로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의해 하나님 보좌 앞에 가 계신다. 이로써 우리가 죽은 후 우리 인성이 하나님 앞에 갈 길을 열었다(히 10:19-20).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직접 갈 수 있는 것도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성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 된 것이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그의 몸을 통해 우리와 연합을 이루셔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대로 다시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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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의 사건현대신학은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고 부인하며 대리적 속죄의 죽음도 부인한다. 따라서 부활도 믿지 않고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음을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이 성취되었음을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으로 구분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묻힌 이후 낮아지심에서 높아지심에 이르는 과정이다. 부활은 높아지심 곧 승귀의 첫 단계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결정하고 보장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시므로 모든 인류의 부활을 보장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다. 죽음과 사망이 더 이상 우리에게 왕 노릇을 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구원의 사건이다. 초대교회 이후 신앙고백의 형식은 이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게바에게, 열두 제자에게, 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나타나고, 그 다음은 모든 형제들, 그리고 500여 형제들에게 나타났다. 이 나타남은 부활의 확인이었다. 초대교회 설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구원으로 사건으로 선포했다. 회개하여 이를 믿을 때 성령께서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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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장사, "지옥에 가신 것을 뜻하지 않는다"예수 그리스도는 전가받은 죄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나를 대신하고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사 53:3-12)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자신의 예언대로(마 12:40, 16:4) 사흘 동안 무덤에 장사되었으며, 요나의 표징과 예표대로 이루어졌다(욘 1:17). 사흘 동안 무덤에 머물렀으므로 그의 죽음은 기절이나 혼수상태가 아닌 완전한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형벌을 지는 죽음이었다. 이는 자신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정점이었다. 사도신경의 로마교회 형식에 의하면 "음부에 내려가시고"라고 되어 있으나 초기 로마형식의 루피누스나 예루살렘 퀼릴로스의 요리문답 본문에는 "장사되시고"만 되어 있고 "음부에 내려가시고"는 없다. 희랍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당한 것으로 가르친다. 로마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니라"(벧전 3:19)는 말씀은 영으로 노아홍수 때의 악한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영의 권세로 구속사건을 그들에게 알리심을 뜻한다. 곧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시므로 그의 구속사역이 옥에 갇혀 있는 악한 자들에게까지 선포됨을 말한다. 버림받은 자들의 자리인 지옥에 갈 수 없다(서철원 <그리스도론>, 220). 개혁신학에서는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으로 친히 지옥에 가신 것을 뜻하지 않는다. 칼빈에 의하면 지옥강하가 십자가상의 고난과 죽음의 극치 곧 땅에까지 묻힌 비하를 말한다(칼빈, <기독교강> II, 16, 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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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복음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다.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된 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다메섹도상에서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 선포했다. 바울은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서 십자가 사건을 구원의 사건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확신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일어났으며 이를 선포하고 기록했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다.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시므로 율법을 다 이루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해방 시켜 주셨다. 역사적으로 예수의 율법 요구를 준수하는 것과 관련하여 많은 논의와 토론이 있었다. 소위 예수의 율법 준수를 능동적 순종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피동적 순종이라고 했다. 예수의 율법 준수로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영생을 얻었다는 주장은 배척받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시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영생이 임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여(빌 2:8) 그의 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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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고 할 때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구속주로 계시하신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로 계시하신 하나님, 무한한 영 곧 절대적 인격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고 하시는가’라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할 때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구원, 창조의 완성 등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시고 자기의 창조를 다스리고 보존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신앙의 초석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이 독립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고 직접 다스리시고 보존하시고 함께 하신다. 우주 만물은 하나님께 의존할 때만이 그 본질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역사의 무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운행해 간다. 결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自然)은 있을 수 없다.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과 무관하지 않는다. 인류의 반역에서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진행된다. 따라서 내가 살고 있는 역사적인 현장 속에서 인간이 불 때 불행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섭리라고 믿어야 하며, 이러한 믿음은 우리을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순종하며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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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자“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하신다. 그 아버지께서 아들인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면 그 아들을 누가 잘 알 수 있는가? 아버지 외에 아들을 정확히 아는 자는 없다.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한 다음과 같은 원칙이 성립된다.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만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우리들은 “오직 예수”를 부르짖는가? 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알고 전하기로 작정했다고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알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