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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입국한 초기 장로교 4개 해외 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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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입국한 초기 장로교 4개 해외 선교부

미북장로교(PCUSA), 호주장로교회(PCV), 미 남장로교(PCUS), 캐나다장로교(PCC),


사본 -장로회 공의회 1901.png


 

미북장로교(PCUSA)


미북장로교 선교부에서 가장 최초로 파송된 선교사는 의료선교사인 알렌(Horace N. Allen)이다. 그와 그의 부인은 1884년 9월 20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원두우(Horace G. Underwood)가 1885년 4월 5일에 그리고 의료선교사인 헤론(J. W. Heron)과 그의 부인이 1885년 6월 21일에 각각 내한하였다. 


알렌은 서울에 첫 번째 병원인 광혜원을 세워 의료선교사로서 그 사역을 감당했다. 그리고 원두우는 1886년에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회심자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성만찬을 행하였다. 그 후 1883년 3월 호톤(Lllias Horton/ 후에 원두우의 부인이 됨)이, 1888년 12월에 기일(J. S. Gale)이 그리고 1890년 1월 25일 마포삼열(S. A. Moffett)이 각각 입국하였다. 


따라서 1890년까지 안수 받은 목사는 3명으로서 원두우, 기일 그리고 마포삼열 만이 한국에 입국한 내한하였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의료 선교사인 헤론(J. W. Heron)과 같이 소천한 사람들도 있었고, 도중에 본국으로 돌아간 자들도 있었고, 혹은 선교사 부인 등도 포함된다. 


호주장로교회(PCV)


두 번째로 한국선교에 착수한 장로교 선교부는 호주장로교회(PCV)로서 호주의 첫 선교사는 1889년에 입국한 데이비스(J. H. Davies)이다. 데이비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영국교회 선교회 소속의 울프(Archdeacon J. R. Wolfe)였다. 그는 동 선교회로부터 파송 받아 중국,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하였다. 그는 건강상 그리고 청불전쟁으로 불안한 정국에서 1885년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잠시 오게 되었다. 이어 한국에 입국한 알렌을 만나 한국의 선교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부산에 머무르면서 한국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한국선교의 필요성을 멜보른 코필드에 위치한 성메리교회의 메칼트니(H. B. Macartney) 목사에게 보냄으로 교회에서 발행하는 국내외선교지에 발표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본 데이비스는 울프의 영향으로 내한하게 되었다. 울프는 이미 인도에서 선교의 경험이 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성공회에서 장로교회로 이적한 때였다. 


그는 선교잡지를 통해 한국에 대해 듣게 되었고, 1888년 11월 22일 일본 선교사인 딕슨과 맥크라덴과 함께 선교사로 인준을 받았다. 1889년에 내한하였다. 하지만 서울을 떠나 경기도와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 지역까지 300마일의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과로와 천연두에 감염돼 폐렴이 되어 1890년 4월 5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죽음으로 1891년 2대 선교사인 맥카이(J. H. MacKay)목사 부부와 미혼 선교사인 멘지스(Bell Menzies)와 페리(Jean Perry), 그리고 파우셋(Fawcett)이 파송 받아 왔다.


미 남장로교(PCUS)


미 남장로교(PCUS) 선교부가 세 번째로 한국에 설치되었다. 이미 한국에 선교사로 내한한 원두우가 1891년 10월 내쉬빌(Nashville)에서 열린 미국신학교선교연맹에 윤치호와 함께 참여하여 한국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이때 그 대회에 참여했던 3명의 유니온(Union)신학교 신학생들이 감동을 받고 한국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들이 바로 전위렴(W. M. Junkin)부부, 이눌서(W. O. Reynolds)부부 그리고 두 명의 독신여성인 데비스(Linnie Fulkerson Davis), 테이트(Martha Samuel Tate)였다. 한명의 남성 싱글인 테이트(Lewis Boyd Tate)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7명의 선구자는 잠시 서울에 머물면서 한국말과 풍습을 익혔다. 그리고 네비우스 지방분할 정책에 따라 미남장로교는 전라도를 책임졌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인해 1895년까지 선교거점을 세울 수 없었다. 1895년 테이트와 그의 자매 마티가 전주지역으로 이동해 갔다. 그 다음에 1896년 군산, 1898년에는 목표에 세워졌다. 1904년에는 광주에 그리고 1913년에는 순천에 각각 선교거점을 마련함으로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었다. 


캐나다장로교(PCC)


마지막으로 한국에 입국한 선교부는 캐나다장로교(PCC) 선교부였다. 캐나다선교부가 한국에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하게 동기를 제공한 인물은 메켄지(William J. McKenzie)였다. 그는 핼리팩스 장로교 대학의 학생선교협회의 대표로서 라브라도 연안을 향해 항해하면서 ‘은둔의 나라’의 책을 읽었고, 한국에 대한 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1893년 여름 캐나다를 떠나 그해 말에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여 황해도 지역 소래로 갔다. 그곳에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가 한국의 선교 상황을 소상하게 적은 편지를 캐나다장로교 총회 선교부에 전달하므로 한국의 최초의 총회선교부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래에서의 지나친 사역으로 인해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소천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소래교회 서경조가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에 편지를 보냄으로 1897년 총회는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자는 의견에 인준하였다. 그리고 핼리팩스 장로교대학 출신가운데 세 명의 선교사를 임명하였다. 그들이 바로 의사이며 목사인 그리어슨(Robert Grieson), 푸트(W. R. Foote) 그리고 선교사는 맥크래(Duncan M. Macrae)였다. 이들은 선교부의 파송을 받은 후 1898년 9월 8일 한국에 도착하였다.101) 그 후 선교부는 함경도 지역을 맡아 선교를 시작하였다.


초기 장로교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여 시행한 사역은 각 선교부마다 차이가 있었다. 미북장로교(PCUSA)는 알렌을 중심으로 한 의료사역, 원두우를 중심으로 한 문화사역 그리고 마포삼열을 중심으로 한 성경학교 사역으로 일관되었다. 호주장로교회(PCV)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은 경상도 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전도을 통한 교회설립을 하였다. 미 남장로교(PCUS) 선교사들은 전주, 군산, 광주, 순천, 목포 등을 선교거점으로 정하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설립하였다. 


캐나다장로교(PCC) 선교사인 푸트, 맥래, 그리어슨은 1898년에 입국하여 학교사역, 주일학교 사역, 여성사역, 성경번역사업, 문서사업, 사회운동 등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적어도 1900년 이전까지의 선교사역의 중심은 미북장로교(PCUSA)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미북장로교로부터 파송한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한국에 입국하여 선교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893년 장로교 공의회가 결성됨으로 각 선교부들의 대표들과 한국인 대표들이 모임으로 협력과 양보의 정신으로 사역을 펼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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