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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14] 불순종한 유다의 선지자를 심판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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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14] 불순종한 유다의 선지자를 심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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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3:1-34


지난 시간에 열왕기상 12:1-33절 말씀을 통하여 “르호보암의 부패와 여로보암의 반역”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북왕국으로 분열해 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솔로몬 왕의 범죄로 인하여 그의 아들 대에 나라가 분열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약속이 열왕기상 12장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르호보암 왕의 악행 정치와 여로보암의 반란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한 형태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결과로 나타난 악행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2장을 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함이 부패하여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남쪽은 르호보함, 북쪽은 여로보암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분열될 때는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분열됨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의 약점과 한계입니다. 잘못된 자신들의 행동에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판단하십니다.


이번에는 본문 열왕기상 13:1-14절 말씀을 통하여 “불순종한 유다의 하나님 사람을 심판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13장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으로 계시되고 있습니까? 즉 하나님은 어떠한 분으로 보여주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열왕기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정치하고 있는가에 관해서 기록됩니다(왕상1-11장). 문제는 솔로몬 왕 이후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분열되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분열 왕국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런 분열 왕국 시대에 두 나라가 모두 부패합니다(왕산 12~22장).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을 패망하게 합니다(열왕기하1-17장). 또한 남쪽 유다도 패망하게 됩니다(왕상18-25장). 이런 이야기가 열왕기서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열왕기서를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범죄한 백성들에게 어떻게 공의로 심판하시며 그 심판 속에서도 어떤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가를 보여줍니다. 한 나라가 패망하는 모습 속에서 진리의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 교훈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구약의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2:24절까지는 남쪽 르호보함에 관해서 기록됩니다. 그러나 12:25부터 13장과 14장은 북쪽으로 분열해 가는 여로보암의 부패와 범죄에 관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 13장 말씀을 통하여 분열 왕국 시대에 북쪽으로 분열해 가는데 주동자였던 여로보암의 부패와 하나님의 심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람의 책망


1.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을 책망하고 징조를 보입니다(1-10절).


1-10절 말씀은 여로보암이 북쪽으로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장소인 남쪽 유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은 백성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지도 않는 곳에서 분향합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이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그를 책망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심판의 징조를 보여주십니다(1-3).


본문 1절에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 벧엘로 갔습니다. 그때 마침 여호보암은 단 곁에 서서 분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이쉬 하엘로힘)이란 ‘선지자’(나비)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남쪽 유다왕국의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키 위해 벧엘로 갔습니다.


2절에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단 곁에서 분향하고 있는 여로보암을 향하여 외칩니다.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요시야라는 아이가 다윗의 집안에서 태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 아기가 태어나 여기서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들을 네 위에 제물로 바칠 것이며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태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심판은 먼 훗날 무려 333년 후에 다윗 왕조에서 출현할 한 왕을 통해 심판하겠다고 합니다. 그 왕의 이름까지(요시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를 잡으라고 명령합니다.


3절에 보면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라고 합니다. 


여기 “그 날”이란 여로보암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그날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징조를 보입니다. 징조란 “미리 보여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징조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이란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기보다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자신의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지는’ 현상(5절)은 훗날 요시야의 숙정(肅正)을 미리 알리는 조짐으로서 말씀하고 있습니다(왕하 23:15-20).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책망할 때 그것을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내가 독약을 음료수인 줄 알고 마시려고 할 때 옆에서 누가 그것을 책망할 때 그것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손으로 집으려고 할 때 목사님이 내 손을 쳤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기분 나빠하실 겁니까?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방치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둘째,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을 해치려고 하자 그의 팔이 마비됩니다(4-5).


본문 4절에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라고 합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의 심판을 예언하자 손을 펴서 “그를 잡으라”라고 하자 그의 손이 마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라고 명령하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즉시 여로보암의 팔이 펴진 채로 마비되었습니다.


이어서 5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대로 갑자기 단이 갈라지고 재가 단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범죄하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고 경고할 때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책망한다고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말씀으로 권면하고 책망하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탄적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셋째, 여호보암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에게 도움을 호소합니다(6).


본문 6절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같이 되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대로 곧바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을 철회하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간청합니다.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여로보암 왕이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같이 되니라”라고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호의를 거절합니다(7-8).


7절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라고 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잠시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물을 주겠다고 합니다. 여로보암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유의 기적인 마치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신을 치료해 준 것에 관해 사례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보암 왕에게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떡은 물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겠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사람을 집으로의 초대와 식사를 나누는 것은 우호 및 친교의 표시였습니다(창 13:1-8). 하나님의 사람에게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여로보암 왕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가 제공하는 그 어떤 음식도 취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여호보암 왕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함께할 경우 그와 함께 망할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9-10).


9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람의 이러한 결단은 곧 하나님께 말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빵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오던 길로는 돌아가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10절에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무수히 많은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십니다. 그러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또한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먼 훗날 여로보암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거짓말


2. 벧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데려옵니다(11-19절). 


유다에서(남 왕국) 온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과 긍휼을 전한 다음에 돌아갔습니다. 10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첫째, 북왕국 한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뒤쫓아 가 만납니다(11-14).


본문 11절에 보면 북왕국에 “한 늙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 선지자 아들들이 남왕국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여로보암에게 행한 일을 보고합니다. 듣고 있는 그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돌아간 그 길을 뒤쫓아가서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벧엘로 데려오려고 합니다.


본문 12절에서는 늙은 선지자가 어느 길로 되돌아갔느냐고 묻자 하나님의 사람이 되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13-14절을 보면 그 늙은 선지자는 나귀를 타고 유다에서 온 예언자를 뒤쫓아 갔습니다. 그러자 14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14절에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둘째,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은 북왕국의 늙은 선지자가 제공한 음식을 거절합니다(15-17).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합니다. 15절에 보면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북왕국 늙은 선지자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16절에 기록됩니다.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러한 결연한 의지는 유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제공한 그 어떤 음식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람은 굳은 결심과 의지를 보입니다.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하나님의 사람은 오던 길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셋째,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에 속아 넘어갑니다(18-19).


본문 18절에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라고 합니다.


북왕국 늙은 선지자는 자신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천사가 나에게 당신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접대하라고 말씀하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본문 하반절에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라고 합니다.


문제는 19절에서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이 북왕국의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19절에 보면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늙은 선지자를 따라가서 그곳에서 식사 대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여로보암과 함께하지 말라고 했으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감언이설에 넘어갑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보냄을 받은 선지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습니다.


딤후 3:13-14절에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합니다. 


우리가 악에 미혹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몰라서 그랬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의 무식과 무지로 인하여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을 듣고 공부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속은 자들


3. 속아서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이 저주를 받습니다(20-32).


거짓말로 범죄했던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외치게 합니다. 이제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무섭습니다.


첫째,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20-22).


본문 20절에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라고 합니다. 식사 도중에 여호와께서 그 늙은 예언자를 통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합니다. 21절에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을 데리고 온 북왕국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가짓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하나님의 사람에게 “너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본문 22절에는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시체로 변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합니다. 22절에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죽게 되어 시체로 변할 것이며, 그의 조상의 묘실에 장사 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이 돌아가는 길에 싸늘한 시체로 변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사자가 물어 죽입니다(23-28).


본문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선지자의 집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나귀를 타고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사자가 그를 물어 죽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가 길에 버려졌습니다(24).


25절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를 보고 북왕국의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일에 대해서 말합니다. 26절에 보니 거짓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죽게 한 늙은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라고 말합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보고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갑니다(27). 그리고 그 시체를 목격하고 확인하게 되었습니다(28). 사자가 그 시체를 먹지 않았습니다.


셋째,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가져가 장사를 지내 줍니다(29-32).


29절에 보면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자기 성읍으로 가져가서 “슬피 울며 장사”를 했습니다. 30절에서는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늙은 선지자는 그의 아들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시체를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라고 합니다(31).


본문 32절에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라고 합니다.


한 선지자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가 여로보암 왕이 북쪽으로 분열되어 범죄한 그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범죄

 

4. 여전히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죄를 범합니다(33-34).


본문 33절에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34절에는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라고 합니다.


한 선지자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한 사건이 있는 후에도 여로보암은 악을 버리지 못하고 제사장으로 지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산당 제사장으로 임명하는 불법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이 죄 때문에 여로보암의 집안은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교훈과 적용


오늘 우리는 구약 열왕기서 13장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또한 무슨 교훈을 받아야 합니까?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열왕기서 13장에서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십니까?


여기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소개받아야 하고 어떤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까?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커다란 범죄 행위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불순종 한 자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순종한 자들에게는 은혜와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을 소개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못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불순종의 범죄 때문에 죽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말 그대로 어두움에 속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그 가운데 구원하셨습니다. 어떻게 구원하시고 빛으로 인도하셨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 자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속고 있는 자들은 아닙니까? 좋은 시절 세상과 함께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우리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보류여야 합니다. 철저한 말씀의 기준이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여로보암은 남쪽 유다를 떠났습니다. 구약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약속은 남쪽 유다에게 있습니다. 그 유다왕국을 떠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그 유다를 통하여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다를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이들이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그 남쪽 유다에게서 떠나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약 밖의 계열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도 그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안 됩니다. 만약에 떠난다면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포기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인하여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붙드실 것입니다. 인도하실 것입니다. 보호하실 것입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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