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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16] 남 왕국(유다)의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왕, 북왕국 나답, 바아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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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16] 남 왕국(유다)의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왕, 북왕국 나답, 바아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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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1-34


지난 시간에 열왕기상 14:1-31절 말씀을 통하여 “여로보암(북 왕국), 르호보암(남 왕국)를 심판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과 남쪽 유다의 르호보암 왕의 범죄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정을 실제로 심판했습니다. 그 집 아들을 병들게 죽게 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남쪽 유다 르호보암 역시 범죄할 때 그들 역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범죄를 지적하고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외치지만 끝내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 진노는 언제나 회개하고 돌이킬 때 거두실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버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충만하고 풍성할 때 마귀의 시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4:21절부터 유다 왕조의 부패가 14:24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15:1-34절 말씀을 통하여 “남 왕국(유다)의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왕, 북 왕국 나답, 바아사의 역사”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남쪽 유다를 어떻게 통치했고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북 왕국 나답과 바아사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범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남 왕국, 아비얌(아비야)


1. 남 왕국,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아비야)에게 임한 은혜(1-8) 


열왕기상하를 이해할 때 본문이 북 왕국(북쪽 이스라엘)인지, 남 왕국(남쪽 유다)인지를 확인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열왕기서는 북 왕국과 남 왕국을 번갈아 가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 왕국의 아비얌의 아버지 르호보암 왕은 17년 동안 통치한 다음에 죽습니다.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 유다의 왕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 18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어(1절), 예루살렘에서 3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아비살롬의 손녀 마아가였습니다(2).


이비얌은 그는 3년밖에 통치하지 않습니다(2절). 아비얌이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 북쪽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아비얌은 아버지가 지은 죄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보고 자랐던지 그 아들 아비얌도 아버지가 지은 죄를 본받았습니다.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진실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을 3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라고 합니다.


3절과 4절 사이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3절에서 아비얌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그 죄악대로 심판하지 않았다는 것이 4절 말씀입니다. 4절에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아비얌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지만 그를 그 죄악대로 심판하지 않는 것은 이미 그의 조상 다윗에게 약속하신 약속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하 7:12-16절 말씀에서 유다의 조상인 다윗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무엘하 7:16절을 보시면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비록 아비얌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의 조상 다윗과 맺은 약속 때문에 유다의 왕조를 완전히 멸망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비록 아비얌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에게 그 후손들과 함께해 주신다는 약속 때문에 아비얌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됩니다. 이것은 값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본문 7절에 보시면 “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비얌의 아버지인 르호보암 때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비얌은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역대하 13:19절에 보시면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의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들과 여사나와 그 동네들과 에브론과 그 동네들이라”라고 합니다. 여기 ‘아비야’는 ‘아비얌’을 의미합니다. 아비야(아비얌)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와 여사나와 그 동네와 에브론과 그 동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얌은 이 전쟁에서 40만의 군대로 그 갑절이나 되는 80만의 여로보암 군대를 물리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깨끗하고 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없다고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합니다. 문제는 죄를 범했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차피 모든 인류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진노의 백성들 가운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죄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진노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범죄 가운데서라도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아비얌이 죄를 범했을 때 그의 조상 다윗과 맺은 약속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죄를 범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36절에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남 왕국, 아사 왕


2. 아비얌(아비야) 의 아들 아사 왕의 성공과 실수(9-15) 


본문 9절에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10절에는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라고 합니다.


아비얌이 죽게 되자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됩니다. 부왕인 아비얌은 3년 통치하지만, 아사는 무려 41년간 남쪽 유다를 다스립니다. 아사가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우상을 제거합니다. 그는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11),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라고 합니다(12). 남색(男色)과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13절에 보면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라고 합니다. 그 모친 ‘마아가’이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했습니다.


남색이라는 것은 당시 이방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제사를 지내는 남자 창기들이었습니다. 푸른 나무숲 아래 산당(14:23)에는 언제나 남자, 여자 창기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에 볼 것 같으면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의 신은 땅에 풍년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당에다 아예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남자 창기를 두었는데 이런 자들을 남색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이런 이방 종교의 풍습에 젖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왕위에 오르자 이런 것을 용납하지 않고 제거했습니다.


아사 왕은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이런 이방 풍습과 그들의 모든 제단과 산당을 철저히 제거하는 듯하였으나 전부를 하지 않고 남겨둔 것이 유감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고 했습니다(14절).


이같은 아사 왕의 개혁 정책은 역대하에도 자세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역대하 14:2-6절에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라고 합니다.


이같은 개혁 정책의 결과 하나님께서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는지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고 평안을 누리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싫어하신 것을 나도 싫어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을 우리도 기뻐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들의 행복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은 우리들의 보통 약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유다 자손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신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종들을 세우시고 그 종들을 훈련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만약에 그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일하게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게 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쓰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아사 왕이 이것에 실패했습니다.


북 왕국과 남 왕국의 전쟁


3. 북쪽 이스라엘 바아사 왕과의 전쟁에서 아사 왕의 실수(16-23) 


본문 16절에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라고 합니다. 이어서 17절에는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라고 합니다.


유다 왕 아사가 41년 동안 통치하면서 두 번의 전쟁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전쟁은 역대하14:9-15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애굽 및 구스(에디오피아)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구스의 세라의 군대는 군사가 100만이요, 병거가 300승이었습니다. 아사 왕의 군대 58만과 비교하면 어림없는 군사였습니다. 그때 아사 왕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대하 14:11)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구스 세라의 군대와 싸워 크게 승리한 아사 왕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찾는데 믿음이 식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풍성할 때 늘 우리들의 믿음이 식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아사 왕의 두 번째 전쟁이 북쪽 이스라엘인 바아사와의 전쟁에서는 그런 믿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은 본문 열왕기상 15:16절 이후에 잘 기록되고 있습니다.


북쪽 바아사가 남쪽 유다를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의지했어야 하는 바아사는 다메섹의 아람 왕을 의지해서 북쪽 바아사를 치게 됩니다. 아람은 이미 북쪽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사는 사람을 보내어 우리가 더 많은 보물을 줄 터이니 북쪽 이스라엘과 맺은 동맹을 포기하고 우리와 동맹을 맺어서 북쪽 이스라엘을 치는 데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18-19).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때 역대하 16장에 보면 그 시대 선지자인 ‘하나니’가 유다 왕조의 아사를 꾸짖습니다. 또한 북쪽 바 아사 왕을 꾸짖는 선지자는 하나니의 아들 ‘예후’가 꾸짖었다고 말씀합니다. 역대하 16장에 보면 선지자 하나니가 아사 왕을 꾸짖자 그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고 맙니다. 사실 하나니가 아사 왕을 책망한 이유는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말은 만약에 아사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에 임했더라면 바아사도 이기고 다메섹도 주관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쳤다고 합니다. 아사 왕에게 과거 세라와의 전쟁에서 하나님만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는가를 상기시키면서(대하 16:8-9) 이제 왕이 망령되어 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시기를 그의 발에 심한 병에 걸리게 합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의원을 찾아갔다고 합니다(대하 16:12). 이 말씀은 의원에게 찾아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려울 때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을 꾸짖고 있습니다. 


전쟁에서도 사람을 의지했던 아사 왕이 자신을 병으로 징계할 때도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런 그가 병이 들어 2년 후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남쪽 유다의 4대 왕인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다고 본문 왕산 15:2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우리 자신과 가정에 닥쳐왔을 때 우리들의 마음 상태를 한 번 보십시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니면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인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을 먼저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뿐만 아니라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말로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상 끝” 하면 됩니까? 


말로만 아니라 그 감사는 순종의 모습으로 그 반응이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순종입니까?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 헌신과 희생은 물질일 수도 있고 나의 달란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서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을 때 교만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아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 분명한 역사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남 왕국, 여호사밧 왕


4. 아사 왕 때에 북 왕국 나답 왕(23-34)


첫째, 남 왕국,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됩니다(24).


본문 24절에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 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라고 합니다.


23절에 보면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41년 동안 남쪽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됩니다. 그가 남쪽 유다 왕이 될 때 북쪽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었습니다. 


둘째, 북 왕국,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됩니다(25-26).


본문 25절에 보면 유다의 아사 왕 2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년 동안 통치하였습니다. 나답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라고 합니다(26). 나답이 자기 아버지처럼 여호와께 범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죄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나답은 여로보암의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하나님 심판의 무서움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집니다. 이미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 때에 나라와 분열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는 솔로몬 왕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열로 이어지는데 그 분열이 여로보암의 범죄로 시작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여로보암의 범죄로 하나님의 예언에 따라 나라가 분열되고 그의 가정이 멸절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쪽 유다 왕국의 왕들이 비록 죄를 범했지만, 은혜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는 이미 다윗과 약속한 언약 때문입니다. 이 약속과 언약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남쪽 유다에게는 긍휼을 베푸시지만, 북쪽 이스라엘에는 그들의 범죄로 망하게 하는 심판이 임합니다. 


셋째, 북 왕국, 나답을 죽이고 바아사가 왕이 됩니다(27-28).


본문 27절에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라고 합니다. 잇사갈 지파 사람인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음모를 꾸며 자기 군대와 함께 블레셋 땅의 깁브돈성을 포위하고 있던 ‘나답’을 쳐죽입니다.


28절에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라고 합니다. 유다의 아사 왕 3년에 바아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여로보암을 심판하시겠는 약속이 바아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29-34).


29절에는 바아사는 왕이 된 즉시 여로보암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실로 사람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들인 나답 왕을 죽이고 바아사가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바아사는 자신의 왕권을 위해 나답과 여로보암의 일족을 멸절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신 대로 쿠데타로 집권한 바아사를 통해 여로보암의 일족을 심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열왕기상 14:6, 11절에서 약속하신 심판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악한 바아사 왕을 통해 여로보암 왕조의 가문을 멸절시킨 것입니다.


이 말씀이 본문 29절에 기록됩니다. “왕이 될 때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라고 합니다.


여로보암 가문이 멸절된 이유는 30절에 기록됩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라고 합니다.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죄의 길로 인도하여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답이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책에 기록되었습니다(31). 


32절에 보면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라고 했습니다. 33절에 보면 유다의 아사 왕 3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디르사에서 24년을 통치하였습니다. 34절에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라고 합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정권의 정통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쪽 유다를 보면 다윗의 후손으로 계속 그 정통성이 이어집니다. 참으로 신기한 역사 기록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아들을 약속해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구약 성경의 역사는 창세기에서 약속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유다로 이어지는 다윗 왕조를 통해 솔로몬, 르호보암, 아사 등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으로 이어집니다. 여로보암은 유다 자손이 아니므로 그의 정통성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인 나답은 바아사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바아사가 나답의 처형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됩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 긍휼이 임하는 곳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곳입니다.


교훈과 적용


열왕기서는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을 병행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왕기서를 읽으실 때 내가 읽고 있는 본문이 남쪽 유다인가, 북쪽 이스라엘인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남쪽과 북쪽을 병행해서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중심은 남쪽 유다에게 있습니다. 남쪽 유다가 구약 성경에서 말씀한 하나님 구원의 줄기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남쪽 유다에게 경고와 은혜를 베푸십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망했다고 한다면 남쪽 유다 너희들도 북쪽과 똑같은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쪽 유다 역시 망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유다를 통해서 이루실 약속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열왕기서 15:1-24절까지 남쪽 유다의 2대, 3대 왕이었던 아비얌과 아사 왕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들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구원의 줄기와 역사는 신약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신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들의 유일한 생명이 되시며 희망과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은 문제의 응답이십니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한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이분을 믿고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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