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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19] 사르밧 과부에게 보냄 받은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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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19] 사르밧 과부에게 보냄 받은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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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왕상 17:1-24


지난 시간에 우리는 왕상 16:8-34절 말씀을 통하여 북왕조의 시므리왕, 오므리 왕, 아합왕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횡행했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남쪽 유다가 아닌 북쪽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길은 먼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왕조의 왕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합왕의 범죄 행위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방 시돈 왕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나라의 왕인 아합왕이 이방 사람의 딸과 결혼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 결혼은 아합왕이 우상을 더욱 섬기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악을 행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악한 왕이었던 아합왕이 북쪽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어떻게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말씀이 되겠습니다.


1. 선지자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가뭄을 예언하다(1절). 


구약성경에서 흉년이나 가뭄은 하나님의 징계 심판으로 설명합니다. 본문 역시 가뭄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본문 17:1절을 보시겠습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 선지자가 가뭄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먼저 엘리야는 내가 다시 명령하기까지 앞으로 몇 년 동안,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아합왕은 하나님께 많은 죄악을 범했습니다. 그런 아합왕에게 선지자를 보냅니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합왕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의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합왕도 회개하면 됩니다. 즉 회개한다는 말은 구약식으로 표현하면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며, 그 언약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렸던 아합왕에게 다시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이키면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아합왕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둘째, 죄를 범한 아합왕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지금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까지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왕도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그 왕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범죄케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품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이 돌이키지 아니할 때 가뭄이 올 것을 예고합니다. 비가 수년 동안 오지 않고 흉년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무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합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온다는 것은 삶이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고통입니다. 환난입니다.


비가 와야 정상적인 그들의 생활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으므로 들에 곡식이 소출을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 고통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징계가 임합니다. 그 징계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 앞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무슨 교훈을 받게 됩니까? 이런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각성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기회는 자주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늘 우리의 입으로 이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합니다.


2.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가 까마귀의 도움을 받다(2-7절). 


하나님께서 아합왕과 북왕조를 심판하기 위하여 흉년을 예고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흉년 가운데서도 엘리야를 보호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단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서 그 시냇물을 마시며 먹을 것을 까마귀 입을 통하여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심판의 흉년 속에서도 엘리야와 함께 하셨습니다.


본문 3-7절 말씀을 다같이 읽으시겠습니다. 


3절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절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절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절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죄악대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 자연 동물까지 동원해서 엘리야와 함께하십니다.


까마귀 입을 통해서라도 선지자 엘리야에는 흉년 속에서도 지켜 주십니다. 까마귀가 무엇을 알아서 엘리야를 돕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지배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까마귀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런 어려운 흉년 속에서도 선지자 엘리야를 기억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당장 죽게 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감당할 사명이 있다면, 그 사명을 위해서라도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3. 사르밧 과부에게 보냄을 받은 엘리야(8-16절)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엘리야에게 임합니다. 흉년으로 그릿 시냇물 마져 마르면 시돈에 있는 사르밧에 한 과부가 있는데 그 과부에게로 가라고 합니다.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고 지시합니다. 그곳에 있는 한 과부를 미리 준비해 주셔서 그 여인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야가 사르밧에 갔을 때 땔감을 줍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10절). 하나님은 순간순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위로를 받게 합니다. 좌절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물을 떠다 드립니다. 엘리야는 먹을 것도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연인은 빵 한 조각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침 통에 가루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 몇 방울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12절). 이제 너무 어려워서 이 땔감으로 나와 아들이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에 죽겠다고 합니다(12절). 얼마나 불행한 이야기입니까?


이때 엘리야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선 음식을 만들어서 먼저 나로 먹게 한 후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왕상 17:14).


그러고 보면 3년 6개월 동안 그 여인의 집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진리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한 여인만을 위해서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눅 4:25-2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5절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절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고 복음을 증거할 때 다 믿지 않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오셨음을 말씀하시면서 엘리야의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야는 당시 사르밧 과부를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북쪽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시돈이라는 이방여인인 사르밧 과부를 부르시기 위하여 엘리야를 보내 주셨습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은 시돈 왕의 딸이었습니다. 그 시돈은 이방인으로서 구원에서 제외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그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를 위해서 엘리야를 보내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입니다. 장차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둘째, 선지자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희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죄악 때문에 고통당하는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선지자 엘리야가 덩달아 몸소 친히 고통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백성들의 죄악 때문에 희생당하는 선지자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희생을 당하셨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희생 없이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에게 함께 하실 때 그의 헌신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사르밧 과부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이 사건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 여인의 삶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그 여인은 분명히 엘리야에게 이런 고백을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12절)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 주었던 것은 이미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이 과부도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마음과 그의 태도는 어쩌면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고백적인 삶의 태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불교 신자들이 목사님을 귀하게 여기며 음식을 대접하겠습니까? 믿는 신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목사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결국 누가 목사님을 돕겠습니까? 결국 같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목사님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4.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으로 표적을 보이심(17-34절).


결국 그 여인의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여 그 여인의 아들을 살려 줍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어우러져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기근으로 심판하시면서 동시에 엘리야 선지자와 사르밧 과부의 가족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입게 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본문 20절에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 죽은 자를 살려주셨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우리는 과거 북쪽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심판과 그 심판 중에서도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과거 옛날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지나쳐 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경고의 말씀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로 인하여 심판과 저주를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한 가족에게 찾아와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피에서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의 성육신은 전능하시고 초월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범죄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끌어들이는 그런 일이 없도록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며 충성하셔서 축복받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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