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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22] 북왕조 아합왕의 승리와 하나님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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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22] 북왕조 아합왕의 승리와 하나님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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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왕상 20:1-43


지난 시간에 19:1-21절 말씀을 통하여 “엘리야의 피신과 하나님의 보호”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등을 돌리고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구약성경에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적대자들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인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계속 진행되게 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때로는 낙심과 좌절 가운데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좌절하고 죽기를 간청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하듯이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언제까지 그런 좌절과 실패 속에서 절망할 것이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엘리야를 보호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보호하셔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본문 20장 말씀 역시 우리를 끝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면서 우리가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긍휼과 자비가 북쪽 아합 왕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람 왕인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공격해 오다(1-12절)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많은 전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같은 전쟁 자체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 전쟁을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러한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때로는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그 전쟁을 통해서 승리라는 방식으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전쟁을 통하여 언약 밖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적대자들에게 전쟁을 통하여 무섭고 두려운 공의의 하나님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아람 왕인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포위해 옵니다. 여기서 아람이란 나라는 시리아를 의미합니다. 아람이란 시리아의 군대 이름입니다. 수도를 다메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이 아람은 하나님의 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아람 왕이 사마리아를 쳐들어옵니다. 쳐들어와서 아합 왕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이때 아합 왕의 비겁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4절에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라고 합니다.


아합 왕은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거절하지 못하고 장로들을 모아 놓고 사태를 의논합니다. 그 때 장로들이 8절에서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아뢰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 한지라.”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은 아람 왕에게 거절합니다. 그러자 아람 왕은 공갈 협박과 위협을 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위기의 때에 아합 왕은 기도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먼저 장로들을 모아 놓고 대책 회의부터 먼저 합니다. 혹 우리가 이런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먼저 기도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선지자의 예언과 이스라엘의 승리(13-30)


위기의 상황에 있는 아합 왕에게 한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선지자의 등장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등장해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절입니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람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을 말씀해 줍니다. 아합 왕이 능력이 있다거나 아합 왕이 거느린 군사가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를 아합 왕에게 붙여주시기 때문에 승리하게 될 것을 말씀해 줍니다.


이러한 승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누구이신지 알게 해서 아합 왕이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결국 16-21절 말씀을 보면 아합 왕이 아람 왕 벤하닷과의 싸움에서 크게 승리합니다.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그때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크게 패한 아람 왕이 날이 밝으면 다시 아람 왕이 쳐들어올 터이니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22절). 드디어 선지자의 예언대로 아람 왕이 다시 평지에서 싸우려고 합니다(22-25절).


그러나 다시 싸우기 전에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다시 싸워도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 약속 말미에 앞에서와 동일하게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28절)고 합니다.


선지자의 약속의 예언대로 아합 왕이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26-30절). 29-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님께서 아람 왕과의 전쟁에서 아합 왕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악한 아합 왕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란 자신의 그동안의 악한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런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런 기회는 자주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아합 왕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람 왕의 벤하닷의 많은 군대와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그렇게 승리하게 함으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고 섬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심으로 그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것도 두 번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이 과연 순종했습니까? 그래서 아합 왕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렸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본문 31-43절 말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3. 대적인 아람 왕을 살려준 아합 왕에게 선지자가 저주하다(31-43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지자를 통하여 아합 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람 왕을 아합 왕에게 붙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아합 왕으로 하여금 아람 왕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항복하고 돌아온 아람 왕을 살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대적인 아람 왕을 제거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거하라고 했으면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그 말씀을 거부하고 살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와 싸울 때 우리들의 인정에 이끌리면 안 됩니다.


이런 아합 왕의 태도에 선지자가 등장해서 저주를 선언합니다. 42절을 보시겠습니다.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제 아합 왕이 죽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아합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므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을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일에 불순종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아합 왕은 하나님께 심판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며 답답하여 돌아갔다고 43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승리 다음에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똑똑해서 승리한 줄 착각합니다. 그런 착각도 문제이지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셨다고 고백한 이후에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올바른 것은 못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될 때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꼭 그때 우리는 교만해집니다. 교회도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 부흥의 배후에는 마귀의 장난도 심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 많은 헌금을 하고 봉사를 많이 한 사람들이 크게 시험을 받는 이유를 아십니까?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열심을 봉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데 차츰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때 마귀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럼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본문 말씀은 단순히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과 아합 왕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떤 하나님으로 드러내고 계신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인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힘입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여전히 하나님의 그런 은혜와 자비를 거부했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아합 왕의 불순종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겠다는 사단적인 발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외면하고 자신의 힘과 자신의 의지로 살려고 하는 그 행동을 하나님은 거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공로를 의지하면 안 됩니다. 그런 우리들의 공로는 하나님께서 철저히 거부하실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복된 복음으로 들려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진리입니다. 진리의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근심과 답답함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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