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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23]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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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강론 23]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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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왕상 21:1-29


지난 시간에 열왕기상 20장 말씀을 통하여 “아합왕의 승리와 하나님의 저주”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아람 왕이 북쪽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그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 왕이었습니다. 그 아합 왕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진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있었습니다. 이는 아합왕이 회개하며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한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선지자가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를 예언합니다. 그 예언대로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언제나 승리와 축복을 받을 때 겸손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아합왕은 그것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저주가 임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본문 21장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아합왕이 그의 아내와 함께 어떤 죄를 범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다(1-3절).


아합왕은 이미 20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런 예언을 듣고 아합왕은 사마리에 있는 자기 궁으로 근심하며 돌아왔습니다(20:43).


이런 무서운 저주의 예언을 선지자로부터 경고로 받았다면 회개해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기는커녕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탐욕을 부립니다. 자신의 궁 옆에 나봇이라는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아합 왕이 나봇에게 정당한 값을 주겠으니 자신에게 팔라고 합니다. 아합왕은 그 포도밭이 자신의 궁 옆에 있기 때문에 “채소 밭을 삼게 하라”라고 합니다(21:2). 


이 사건은 이런 문제가 개입됩니다. 나봇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입니다. 그 땅에는 자신들 조상들의 묘가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 25:23절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또한 민수기 36:7절에도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입니다. 이같은 땅은 팔지 말아야 합니다. 혹 실수로, 극한 상황 속에서 팔렸다고 해도 가까운 친족은 그 밭을 사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봇은 3절에서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정당한 값을 치러 준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아합왕은 하나님께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나봇은 자신의 생계를 위한 전 재산입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단지 채소밭 정도로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없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한다면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왕의 자리는 백성을 섬겨야 하는 자리입니다. 아합왕은 바로 그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였습니다. 아합왕은 지금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혹 우리가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때 가진 자가 도움을 주겠다는 핑계로 자신의 탐욕과 탐심을 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야 할 임무를 거역하면 안 되겠습니다.


2. 이세벨의 사악한 음모 - 나봇을 죽인다(4-16절).


본문 5-6절 말씀을 보면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수중에 넣지 못하므로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가를 보여줍니다.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악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을 그의 악한 아내가 보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합왕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줍니다. 아내가 남편 아합왕의 말을 듣습니다. 듣고 있는 이세벨은 그런 것 가지고 무슨 근심을 그렇게 하느냐고 합니다. 당장 그 포도원을 왕의 소유로 돌려놓겠다고 합니다.


현명한 아내라면 “그것은 당신이 잘못한 것입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세벨은 더욱 악한 사람입니다. 모든 권력을 동원합니다. 권력뿐만 아니라 폭력까지를 동원합니다. 그래서 나봇을 죽이려고 합니다. 어떻게 죽입니까? 나봇이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10절)는 제목으로 죽입니다. 어떻게 죽입니까? 성문 밖으로 끌고 가 돌로 쳐죽입니다(10,14절).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죄 없는 나봇이 죄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한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서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인이 죄인에 의해서 희생을 당합니다.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고 영문 밖에서 돌에 맞아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치 어린양과 같은 희생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들에 의해서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거룩한 희생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인들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 말씀에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엘리야가 아합왕과 이세벨을 만나 저주를 예언한다(17-26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을 당한 나봇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마치 가인에 의해서 아벨이 죽었을 때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하듯이 나봇의 희생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원한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죄인을 찾아 심판하실 것입니다. 저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동원하십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 아합에게 저주를 선언하게 합니다(18-19절). 그 저주의 선언이 더 구체적으로 20절 하반절부터 24절까지 이어집니다.


20절에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고 합니다(20절).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라고 했습니다.


2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라고 합니다.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22절에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라고 합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왕들처럼 그들이 범죄하여 여호와를 노하게 했습니다.


23절에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세벨에게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에서 이세벨의 시체를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24절에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합니다. 아합왕에게 속한 자들이 성읍에서 죽으면 개들이 그 시체를 먹을 것이요, 들에서 죽으면 공중의 새들이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로”(20절),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22절)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런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행동들을 보면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믿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4. 아합의 겸비로 저주의 재앙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한다(27-29절).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왕에게 책망하고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때 아합왕이 27절에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라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2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아합왕이 회개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말씀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와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왕에게 심판을 거두시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들 대에 내리시겠다고 합니다.


그런 심판과 저주의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의 길이 인내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우리를 치시고 저주하신다면 우리가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돌릴 때도 길이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여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기다려 주신 분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길이 인내하심을 시험하면 안 되겠습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아합왕은 자신들이 사는 땅은 이미 조상들에게 약속해 주셨던 언약의 땅이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그 언약의 땅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 언약이 깨어질 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땅은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선지자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아합왕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해야 함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맺은 새 언약이 있습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가정생활, 사회생활, 교회 생활이 결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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