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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강론 2] 선지자 사역을 시작한 엘리사(왕하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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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강론 2] 선지자 사역을 시작한 엘리사(왕하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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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열왕기하 1장 말씀을 통하여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게 내린 하나님의 저주”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아하시야는 그토록 악했던 아합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가 북쪽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병이 걸렸습니다. 자신의 병을 이방신에게 묻는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 왕이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이방신에게 묻는 행위는 하나님을 거부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습니다. 여가서 저주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반기를 든 하나님의 적이라는 의미입니다.


1. 엘리야가 사역을 마치고 승천합니다(1-14절).


하나님께서 그동안 엘리야를 통하여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왔습니다. 엘리야의 활동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저주를 선포하는 엘리야의 활동은 분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야의 사역이 마쳐지고 있습니다. 그는 영광스럽게도 승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승천하게 하시기 전에 그를 길갈에서 벧엘로, 다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여정을 이동할 때 꼭 엘리사를 동행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엘리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랐기 때문에 그가 선지자로 선택을 받아 능력있게 쓰임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선택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뿐만 아니라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마지막 여정을 동행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시대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전할 선지자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가 벧엘과 여리고를 지날 때에 그곳에는 특별히 선지자의 생도들이 나타납니다. 그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선생인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엘리사 역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생도들에게 나도 안다고 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타일러 줍니다(3,5절).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요단에 이르게 하시고 그 요단을 갈라 건너게 합니다. 그때도 엘리사가 엘리사와 함께 요단을 건넙니다. 그 광경을 여리고에 있는 선지생도 50명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 생도들에게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단을 건넌 다음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9절)고 합니다. 그때 엘리사는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내가 하나님께로 갈 때 그것을 보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합니다. 그때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11절)고 합니다.


엘리야가 승천한 이후 그이 겉옷이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가른 다음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12-14절). 이제 선지자의 옷이 엘리사에게 전해졌습니다. 엘리야를 이어서 엘리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 받은 장면이 기록된 곳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면서 등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선지자로 부름 받는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선지자가 세워져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자로 감당하기까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세심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의 모든 직분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생도들이 엘리야를 찾습니다(15-18절).


여리고의 50명의 선지생도들은 회리 바람과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옮겨졌음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지생도들이 엘리사의 특별한 소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엘리사 앞에서 절을 했습니다(15절).


늘 존경은 우리 신앙인의 세계에서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질서나 사회에서의 위계질서를 절대로 무시하면 안됩니다. 마땅히 존경할 자를 존경히 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존경을 받으려고 노력도 해야 하겠습니다마는 존경하려는 자세와 태도가 갖추어져야 하겠습니다.


엘리야는 승천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생도들은 엘리야가 승천한 것을 깨닫지 못했나 봅니다. 단순히 엘리야가 다른 장소로 옮겨진 줄로 알았습니다. 열왕기상 18:12절에서 오바댜가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의 영이 엘리야를 그들이 알지 못하는 장소로 옮겼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엘리사에게 찾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엘리야를 찾는 일을 단념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도들이 너무나 간청하는 바람에 무정함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허락합니다. 엘리사가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찾지 못하고 사흘 후에 돌아옵니다. 그 이후로 엘리사의 말은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생도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역시 이런 존경받은 주의 종이 필요로 합니다. 이 말은 너무나 많은 존경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가 좋은 성도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 지도자를 먼저 심판하였습니다. 악한 왕을 세워 버렸습니다. 악한 왕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그 백성을 심판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3. 엘리사가 여리고성 물을 소금으로 깨끗케 합니다(19-22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물이 깨끗하지 못하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물을 통해서 대 재앙이 올 수도 있습니다. 즉 물이 더러워서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습니다.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물에는 곡식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 나라는 물을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환경 공해 때문에 물 때문에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을 끌어오려고 할 때 지역마다 서로 물을 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문 역시 당시 여리고에는 물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라고 하소연합니다. 물이 좋지 못해서 곡식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때 번성함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언약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풍요를 거두어가셨습니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로 하여금 그 물을 깨끗하게 해서 다시 원상 회복되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물을 깨끗하게 해 준 덕에 “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21절)고 했습니다. 결국 엘리야가 이 물을 깨끗하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21절)라고 하시므로 고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합니다. 물에 소금을 집어넣자 좋아졌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물에다 소금을 넣으면 물은 더 나빠집니다. 그런데 물이 좋아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소금을 넣었으니 물이 더 나빠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좋아졌다는 것은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을 보여줍니다.


마치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나무에 물을 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불이 붙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여리고성 사람들에게 엘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입증해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이 그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풍요를 가져다주신 분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그들의 황폐함과 가난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축복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풍요를 가져다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들이 잘 믿어야 하겠습니다.


4.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하다 저주받는 자들이 있었습니다(23-25절)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는 길에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여기 젊은이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닙니다. 길에서 그들과 마주쳤습니다. 아마 그들은 바알의 추종자들 내지는 바알의 선지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를 그렇게 경멸스럽게 조롱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그 젊은이들이 엘리사를 향하여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23절)고 조롱했습니다. 이 조롱은 엘리야가 승천하여 올라갔는데 엘리사 당신은 왜 승천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도 엘리야처럼 위대한 선지자라면 올라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롱입니다. 


대머리라는 별명은 당시 추방자로 여겨졌던 문둥병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문둥병자는 머리를 짧게 깎았습니다. 이를 두고 대머리라는 별명으로 조롱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대머리는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것을 염두 하면서 경멸의 표시로서 대머리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경멸하며 조롱하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내립니다. 그때 수풀에서 곰이 나와 42명을 죽였습니다. 곰이 어떻게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내려진 줄 알고 물어 죽여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동물까지라도 이용해서 심판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리사의 저주는 자신의 자존심에 때문에 내린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그렇게 했다면 저주는 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자를 경멸하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이 일 후에 엘리사는 사마리아로 돌아옵니다. 사마리아는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선지자의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훈과 적용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약의 역사를 이어가셨는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필요로 하는 종들을 보내셔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하고 말씀을 소개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종들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않으면 그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보내시고 또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영접하고 주님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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