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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강론 4]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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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강론 4]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본문 / 왕하 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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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열왕기하 3장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해 주시고 모압을 치게 하신 하나님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 역시 다른 왕들처럼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했습니다. 여호람의 부친인 아합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조공을 바쳤던 모압이 이제 여호람이 왕이 된 이후 바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남쪽 유다와 에돔과 함께 연합군을 형성하여 모압을 치러 가는 도중에 광야에서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엘리사를 통하여 물을 공급해 주시고 모압을 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1. 과부의 어려움을 기름병 이적으로 도와줍니다(1-7절).


열왕기하 4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을 보시겠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선지생도가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죽었습니다. 그 아내는 이제 과부가 된 것입니다. 그 과부가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선지 생도인 남편이 많은 빚을 남기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빚쟁이가 빚 대신 두 아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삼겠다는 기막힌 사연을 엘리사에게 전합니다.


이런 어려움은 엘리사 당시에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 같습니다. 목회의 길을 가겠다고 공부를 합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목회의 길을 가겠다고 준비한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납니다. 사모님은 이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이 과로로 쓰러져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사모님은 앞길이 캄캄합니다. 교회에서는 사택을 비워 달라고 합니다. 눈물을 머금고 아무런 대책이 없이 교회에 쫓겨난 사모님들과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선지자 엘리사가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합니다. 엘리사는 과부에게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과부는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합니다(2절). 


이 말을 듣고 있던 엘리사는 이웃집에 가서 빈 그릇을 많이 빌려 오라고 했습니다. 방문을 잠그고 두 아들과 함께 그릇마다 기름을 따라 부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릇마다 부을 때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두 아들과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여기 이 기적의 혜택을 본 아내와 두 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은 사람입니다. 엘리사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7절)이라고 합니다.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므로써 엘리사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임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은 “여호와를 경외했던”(1절) 죽은 선지 생도의 아내에게 주어졌습니다. 어려움에 빠져 있는 그 가정에 엘리사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2. 경건한 수넴여인에게 아들을 약속합니다(8-16절).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수넴이란 지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경건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엘리사를 초대하여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그 뒤로 엘리사는 그 마을을 지날 때마다 그 여인의 집에 들러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대접할 뿐만 아니라 자기 집에 방 하나를 마련하여 엘리사에게 제공했습니다.


선지자가 쉬어 갈 수 있는 방을 별도로 만든 것입니다. 방을 만들면서 그 여인이 자기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면서 방을 만들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9절) 


수넴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마태복음 10:4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수넴여인이 제공한 방에서 엘리사와 엘리사를 돕고 있던 사환인 게하시가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수넴여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12절). 그 여인이 오게 되자. 엘리사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시는 부인께 우리가 대신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혹시 우리가 왕이나 군사령관에게 가서 부인의 아들을 위해 부탁할 일은 없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인은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엘리사는 무엇인가 이 여인에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나무나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사환인 게하시에게 부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게하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수넴여인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들을 두기에는 남편이 너무 늙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엘리사가 할 일을 발견합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다시 그 여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 여인이 오게 되자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이 말씀은 내년 이 맘 때가 되면 아들을 품에 안을 것이라고 약속해 줍니다. 그러나 이 수넴 여인은 아브라함의 아내처럼 그럴 수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시 아들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차단되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닫힌 태의 문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아들이 없는 수넴 여인의 생활이 어떠했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들을 낳지 못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는 인간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나이에 선지자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줍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긍휼과 복입니다.


그 긍휼과 복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을 영접”한 그 가정에 내린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셔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살아가는 종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3. 죽은 수넴여인의 아들을 살려주십니다(17-36).


본문 17절에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약속해 준대로 그 여인은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제법 자란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밭에 추수하는 곳에 갔다가 갑자기 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그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 품 안에서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죽은 아이를 자기 집의 선지자 침실에 뉘어 놓고 급히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갔습니다. 수넴에서 갈멜산까지는 약 24킬로미터쯤의 거리입니다. 수넴여인은 엘리사에게 하소연하며 슬픔을 토로합니다.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28절) 


내가 원하지도 않는 아들을 주시더니만 그 아들이 죽었으니 이 괴로움을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가서 고쳐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게하시는 가서 고쳐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가서 그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은 아들을 살려 주시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수넴여인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 임했습니다. 어린 생명을 수넴여인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죽었던 아들을 살려주시므로 그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한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같은 그들의 믿음 위에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말씀을 읽고 어떤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까? 수넴여인의 집에 선지자를 통하여 찾아오셨습니다. 그 여인의 집에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은 우리들의 첫 열매였습니다. 우리들도 그처럼 부활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국 속에 있는 독을 제거시켜 주셨습니다(38-41절).


당시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했던 북쪽 이스라엘은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범죄할 때 내린 징계였고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땅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여전히 돌아오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사가 성소가 있는 길갈로 돌아왔습니다(38절). 그곳에는 선지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흉년이 들었기에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들에서 채소를 캐 와서 국을 끊였습니다. 그런데 그 채소에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국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들에서 캐 온 채소에 독이 있었다는 것은 채소마저 먹을 수 없는 고통의 상황이 닥쳐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 시대가 얼마나 타락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언제나 백성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은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를 무너지게 합니다.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게 한다던가 땅이 열매를 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지금 그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그 독이 들어 있는 국을 깨끗케 하는 기적을 베풀어줍니다.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했습니다. 먹을 수 없는 국을 먹을 수 있는 국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징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40절).


5. 적은 떡과 채소로 많은 군중을 먹게 하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42-44절).


마치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는 듯합니다. 어떤 사람이 첫 열매로써 보리떡과 채소를 엘리사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100명에게 다 줄 수가 없었습니다. 100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43절). 그랬더니 44절에 보니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라고 합니다.


교훈과 적용


우리들이 살펴본 열왕기하 4장은 하나님의 기적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이런 기적은 심판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긍휼과 자비였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하 4장은 무려 10번 정도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가 등장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란 엘리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하심과 자기 백성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관심이 얼마나 자상하시고 세밀하신 가를 보여줍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신앙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어려운 일로 인하여 좌절하면 안 됩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관심과 은혜를 기대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4장의 여러 기적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긍휼과 자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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