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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강해 10] 북 왕조, 예후를 세워 북 왕조를 심판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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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강해 10] 북 왕조, 예후를 세워 북 왕조를 심판하신 하나님

본문 / 왕하 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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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의 말씀


지난 시간에 열왕기하 8:16-29절 말씀을 통하여 “악을 행하였으나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남쪽 유다왕인 여호람이 북쪽 이스라엘의 악한 왕과 같이 죄를 범했다고 합니다. 북 왕조의 왕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심판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북 왕조의 왕과 같이 남쪽 유다 왕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남쪽 유다 왕이었던 여호람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가 선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조상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남 왕국 여호람 왕은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남쪽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하시야 왕 역시 가장 악했던 북 왕조의 아합과 같이 악을 행합니다. 


그러나 아하시야 역시 죽습니다. 그런 왕들의 죄악의 길에서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보호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유다 지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런 구원의 약속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께 보호하십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1. 예후가 요람을 이어 북 왕조의 왕이 됩니다 (1-13)


이미 8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위해서 엘리사로 하여금 하사엘에게 아람의 왕이 될 것을 말씀하시고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9장에서는 똑같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위해서 예후를 기름 부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합니다. 이렇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열왕기상 19:17절에서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라고 예언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심판 예언은 열왕기하 9장에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심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심판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의 집을 심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심판의 말씀이 7-10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7-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이 말씀은 아합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목적을 이야기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후를 왕으로 세워 아합의 집을 심판하셨습니다.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판의 도구로 사용될 때 예후는 늘 하나님의 무서움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사실 10장에 보면 그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어 살다가 하나님의 그 무서운 심판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에 의해 쓰임을 받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쓰임을 받은 후에 버림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기로 약속하신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지(그것이 심판을 위해서든 구원을 위해서든) 쓰임을 받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바울 사도께서 말씀한 “나를 쳐 복종케”하여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께 묻고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북 왕조인 이스라엘 왕 요람(여호람)과 남 왕국 유다 왕 아하시야가 죽습니다 (14-29).


북 왕조의 요람왕이 결국 죽습니다. 이 요람왕을 ‘여호람’이라고도 합니다(왕하1:17). 그러나 같은 시대 남쪽 유다의 왕인 ‘여호람’도(왕상22:50, 왕하1:17) 있습니다. 이름은 같지만 북 왕국과 남 왕국이라는 서로 다른 나라입니다. 또한 북 왕조의 아합의 아들이었던 아하시야 왕과(왕상22:40) 남쪽 유다 왕 아하시야(왕하8:25)도 있습니다. 혼동하면 안 됩니다.


북 왕조 요람이 예후에 의해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시겠습니다(14-26).


첫째, 예후가 요람왕을 배반하여 추격합니다(14-16). 


이미 8장에서 우리는 남쪽 유다 여호람왕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요람)과 함께 아람 왕 하사엘 왕을 상대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북쪽 요람은 오히려 상처를 입고 쫓겨왔습니다. 거기에는 유다왕인 아하시야도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 왕조의 요람은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합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악한 왕이었던 아합과 그 집이 멸망을 받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제 그 아합의 아들인 요람 역시 멸망의 막다른 길에 놓여 있습니다. 


이 요람은 북쪽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엘리야 선지자와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했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많은 능력과 기적을 요람은 목격했고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순간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그 요람을 심판하기에 앞서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게 만듭니다. 요람이 왕으로 있는데 다른 사람인 예후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요람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비참합니까? 여전히 요람은 자신이 왕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왕은 예후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배반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아무개에게 배신당해서 망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배신당할 때 나의 죄가 무엇인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예후의 추격을 파수꾼이 요람에게 보고합니다(17-20). 


배신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제 침략당합니다. 이방 대적에게 침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족인 사람들에게 침략받게 만듭니다.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그러나 미리 사람을 예후에게 보내 맞이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용서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은혜를 받고 용서를 받은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이 땅에 어떤 은혜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 이런 은혜의 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 예후가 요람을 죽여 시체를 밭에 던지라고 합니다(21-26). 


21절에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라고 합니다. 


여기 ‘메우라’라는 말은 병거를 탈 수 있도록 필요한 제반 준비를 갖춘다는 말입니다. 도망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후에 의해서 죽습니다. 


24절에 기록됩니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이렇게 해서 죽지만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한 대로였습니다(25절). 이렇게 하여 북쪽 이스라엘의 요람이 예후에 의해서 죽습니다.


북 왕조의 요람이 죽은 후에 남 왕조 아하시야도 죽습니다(27-29). 


본문 27절에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고 했습니다. 


요람이 죽는 것을 남쪽 유다 왕이었던 아하시야가 보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예후가 쫓아가서 그 역시 죽입니다. 이것 역시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남쪽 유다의 왕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라를 치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 왕국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유다 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그런 유다 왕국의 왕이었던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죄악의 길로 가던 북 왕조 요람과 함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하시야 역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수행하고 있던 예후에 의해서 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과 함께하며 친구가 된다는 것은 불신앙과 다름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복이 임합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죄짓고 원망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같이 망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3. 이세벨도 심판받아 죽습니다 (30-37)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내였습니다. 바알과 거짓 선지자들의 대모였습니다. 


열왕기상 16:31절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세벨의 남편에 대한 평가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다같이 본문 30,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과거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거짓 선지자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다 죽일 때 엘리야에게 그토록 당돌했던 그 이세벨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자신의 아들 요람을 죽인 예후에게 당돌하게 나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곧 죽는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언제나 권력자들은 그래 왔습니다. 예후는 “내 편이 될 자가 누그냐”고 소리쳤습니다(32절). 


그러나 이세벨을 좋지 않게 여기던 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때 예후가 그들에게 이세벨을 창문에서 아래로 던지라고 합니다. 그 말씀이 33절에 기록되었습니다. 33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예후가 “이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라고 합니다(34절). 그러나 35절에 보면 이세벨의 시체 가운데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고 합니다. 


이세벨의 시체 중에 몇 부분 이외에는 찾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36절에서 말해 줍니다.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다 먹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열왕기상 21:23절에서 이미 예언했습니다. 


왕상 21:23절에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비참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조롱했던 자들에게 이런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비참한 말로입니다.


교훈과 적용


우리는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됨됨이를 배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 역사와 인물들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뜻대로 이 역사를 이끌어 갑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항하고 범죄 했던 자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섭리하고 계신가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역사는 우연의 역사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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